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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그 집과 가구는 누구의 것일까>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 실내디자인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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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양현모기자
  • 20.03.12 09: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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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뒤늦게 영화 <기생충>을 봤다. 워낙 화제의 영화다 보니 영화 속에 등장한 가구만 따로 때어 보며 즐겼다. 박 사장(이선균 분) 집에는 박종선 작가의 작품이 다수 등장한다. 조선조 목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가구로 국내외에서 명성이 높다. 대부분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절제된 디자인으로 수직 수평선만으로 이뤄진 조형이 수려하다. 장식용 스탠드 다리의 유려한 곡선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절제와 겸손의 미학, 절묘한 비례와 소박한 조형 등 조선조 목가구를 상징하는 언어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부잣집 내부의 소품으로 활용됐다.

 

연교(조여정 분)가 혼자 짜파구리를 먹을 때, 카메라는 그 앞에 펼쳐진 4미터 쯤 돼 보이는 식탁의 상판과 빈 의자들을 잡는다. 영화 초반에는 8개였던 의자가 그 장면에서는 10개가 됐고, 근세(박명훈 분)가 칼을 뽑아가는 장면에서는 다시 8개가 된 것도 그래서 보게 됐다. 의자 숫자에 담긴 봉테일의 의도는 따로 있겠지만, 나는 테이블과 의자 사이에 나타나는 여백의 미를 즐겼다. 의자의 개수가 달라질 때마다 식탁 아래 빈 공간이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며 시각적 즐거움을 줬다.  

 

거실의 가구도 흥미롭다. 소파의 부부와 테이블 밑 기택(송광호 분) 가족을 카메라가 천정에서 잡자, 다섯 조각으로 나눠져 원형 계단처럼 돌아 내려가는 상판의 모습이 보인다. 소파와 테이블이라는 미미한 높이의 차이, 그러나 그 차이를 다섯 단계로 면밀히 나눈 계단 아래 기택네 가족이 납작하게 숨죽인다. 테이블 디자인은 잠시 후 끝없이 이어져 내려갈 도심 속 계단 행렬의 압축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박 사장 가족이 식탁이나 거실에 한꺼번에 모여 있는 장면은 영화 내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계단을 통해 거실로 올라와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식탁 의자에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누거나 머무는 것이 전부다. 거실의 가구들이 가장 왕성하게 사용될 때는 딱 두 번, 주인 없는 집에서 기택 가족 4명이 한바탕 먹고 마실 때와, 소파에서 사랑을 나누는 부부와 테이블 밑에 깔린 기택 가족 3인이 공존할 때다. 그 외의 시간에는 영화 속에서는 물론 실제로도 그 가구와 공간의 사용빈도는 높지 않을 것이다.

 

그 집과 가구를 가장 살뜰하게 사용한 사람은 문광(이정은 분) 내외였다.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그들은 햇살, 전망, 음악, 춤, 차, 대화, 여유를 만끽했다. 지속 가능하지 않기에 더 절실하고 행복했으리라. 반려견과의 산책을 즐긴 것도 문광이었다. 결국 문광은 그 집 마당에 묻혔으니, 문광과 이 집의 인연은 길고도 깊다.

 

집 주인이 바뀐 후, 기우(최우식 분)가 망원경으로 훔쳐본 독일 가족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계절은 겨울이었지만 풍경은 따뜻했다. 아들로 보이는 아이는 바닥에 엎드려 스마트폰을 보고 있고, 소파의 어른들은 무언가를 함께 마시며 담소를 즐긴다. 기우의 망원경에 잡힌 거실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던 박 사장 가족의 삶을 상기시킨다.

그들에게도 독일 가족이 누리던 ‘저녁 있는 삶’이 있었을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가진 집, 가구, 정원의 의미는 뭘까? 갖고 있으나 즐길 수 없다면 내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을 꿈꾸거나 욕망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만약 나라면 그 집과 가구를 어떻게 사용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집에서 내가 탐나는 건 박종선 작가의 식탁 의자뿐.

 

코로나 19로 인한 재난상황이 길어진다.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고 개강도 연기됐다. 속도를 늦추고 게으름을 만끽하며 내면을 돌볼 기회로 삼겠다고 결심한다. 실천의 방법으로는 ‘주변 정리’에 도전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 가지고 있을 뿐 즐기지 못하는 것들을 덜어내고 나누거나 버리면서, 얼떨결에 주어진 시간의 선물에 적응해 보리라. 

 

#힘내라_대구_경북_대한민국_질병관리본부_의료진여러분

#I am OK. You First!

 

 

 

 


 

김진우, jinwookim@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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