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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디자인대학 김진우교수와 함께하는 <아직은 괜찮다>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 실내디자인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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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양현모기자
  • 20.01.30 11: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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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 2014)>의 한 장면. 데니스틴 중령이 수학자 앨런 투어링을 인터뷰한다. 이력서를 훑어본 중령이 24살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가 된 그에게 천재 아니냐고 묻는다. “뉴턴은 22살에 이항 정리를 발견했고, 아인슈타인은 26살에 쓴 네 편의 논문으로 세상을 바꿨죠. 그에 비하면 저는 평균 정도 아닐까요?” 투어링의 답변이다.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 속의 인물들은 대개가 그랬다. 유난히 일찍 두각을 나타냈고 떡잎부터 될성부른 나무였다. 위인전을 읽다가 닮고 싶은 사람이 생기고, 그걸 계기로 전공이나 직업을 찾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나는 예외였다. 거실의 한 쪽 벽면을 길게 차지하고 있던 전집 속의 인물들은 나와는 다른 종의 사람들 같았다. 어떤 식으로든 내 삶과는 접점이 없어 보였다.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만나는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이 말문을 트자고 하는 질문 중 1, 2위를 다퉜던 것이, ‘공부 잘하냐?’와 ‘존경하는 사람 누구냐?’였다. 그때마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곤란함을 느꼈다.

 

위인전 속 인물들을 닮고 싶다고 생각진 않았지만, 그들이 이룬 업적 옆에 적혀있는 생물학적 나이에는 신경이 쓰였다. 요즘처럼 해가 바뀔 때나, 시간이 나만 빼고 달음박질친다고 느낄 때는 특히 그랬다. 내 나이 22살, 26살은 어땠을까? 뜬금없이 회상하며 초라해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지역적 배경과 상황은 물론 개인적 자질의 차이마저 무시한 채 위축됐었다.

 

어린 시절 나를 설레게 했던 사람들은 위인이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이었다. 도대체 일이 안 풀리는 사람, 매사가 어긋나는 사람, 늘 비교당하는 사람, 혐오감을 주는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즐비했다. 내가 가진 결점과 고민을 고스란히 가진 주인공들을 만날 때마다 폭풍처럼 감정이입 하며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픽션의 바다가 내겐 오히려 현실적이었다.

 

세상을 바꾼 위인들 덕분에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 그것은 너무 당연해서 의식하기 어려운 공기와 같으리라. 그들의 삶과 업적에 감사한다. 하지만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의 삶과 질은 그 공기 속에서 매일 만나고 관계하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주변을 돌아본다. 캠퍼스 고양이들의 추운 밤과 따뜻한 물 한 모금을 걱정하는 사람들, 누군가의 말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친구들의 편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별 것 아닌 음식이라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책을 함께 읽고 그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존재와 그들과의 관계가 내 삶의 좌표다. 지구상의 모든 호모 사피엔스가 위인이 될 수 없고 될 필요도 없지만, 지척에 있는 친구, 이웃, 스승의 존재는 사회적 동물인 우리에게 필연이다.

 

새해를 맞은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설날이다. 다른 해와 달리 올해는 별다른 새해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는 데로, 몸이 허락하는 데로, 내게 가장 어울리는 자리에서, 가장 나다운 목소리를 내리라 결심해 본다. 세월에 등 떠밀리지 말고 세월의 바다에 올라타 함께 흘러가리라.

 

 

가끔씩 속도, 목표, 성과 지향의 DNA가 머리를 쳐들고 나를 다그칠 때는 다음 문장을 기억하면 된다.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루쉰은 마흔이 다 돼서 데뷔작을 썼고, “해적에게 붙잡혀 강제노동도 하고 새경을 받지 못해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던 세르반데스가 돈키호테를 쓰려고 마음먹은 것이 쉰일곱, 출판한 것이 쉰여덟”이다. “서른두 살, 사업에 실패 후 간신히 회생하지만 보잘것없는 무명인으로 지내던 중 쉰아홉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대니얼 디포의 로빈스 크루소”,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를 쓴 것은 쉰셋, 스탕달이 첫 작품 적과 흑을 쓴 것은 쉰둘, 그리고 헨리 밀러가 20세기 문학의 금자탑 북회귀선을 완성하는 것은 마흔셋.(사사키 아타루, 이 나날의 돌림노래, 김경원 옮김, 여문책, 2018, 163쪽) 이런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고미숙,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북드라망, 129쪽에서 요약 및 재인용

 

 

신기하다. 거의 모두가 위인전 대신 나를 매료시켰던 바로 그 소설들이다. 그러니 아직은 괜찮다. 내 속도에 맞춰 나답게 살면 된다.



 


 

김진우, jinwookim@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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