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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도시에도 의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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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양현모기자
  • 19.11.28 10: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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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도 의자가 있다>

“한 도시의 질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그 도시의 옥외공간에 머무느냐에 달렸다.”

 

도시에도 의자가 있다. 누군가의 기획에 의해 탄생한 의자나 벤치, 버스정류장의 대기공간은 물론 건물의 난간, 계단, 화단의 모서리 등에도 사람들은 앉는다. 도심 속 의자의 경우 의자의 형태나 기능보다 그들이 놓인 장소나 환경이 더 중요하다. 날 좋은 점심시간,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 들고 사무실을 나서보라. 지나가는 자동차의 매연과 낯선 사람들의 시선, 혹은 나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뜨거운 햇빛 혹은 그림자 등을 피해 내가 앉고 싶은 ‘그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나? 간단치 않다. 인간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옥외공간에 앉기 때문이다. 앉는 행위는 다분히 적극적인 의사결정이다. 야심 차게 기획된 의자들이 외면당하기도 하고, 계단, 돌, 바위들이 시민의 사랑을 받기도 하는 장면은 그래서 생긴다.

 

도시에 앉는다는 건 뭘 의미하나? “한 도시의 질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그 도시의 옥외공간에 머무느냐에 달렸다.”라고 한 덴마크 건축가 얀 겔(Jan Gehl) 교수님의 말씀을 상기해보자. 그 말이 맞는다면 사람들을 최대한 건물 밖으로 초대해야 한다. 길거리의 카페와 과일 가판대, 분수대 주변을 가득 채운 인파가 없다면 우리는 유럽의 도시를 지금처럼 동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도시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대표적인 성공사례인 코펜하겐을 보자. 덴마크 정부와 얀 겔 교수 연구팀은 먼저 차도를 줄이고 사람 길을 늘려갔다. 보행자 전용도로를 1평방미터씩 꾸준히 확장했다. 핵심은 차의 위험과 속도로부터 분리된 안전하고 편안한 보행자 전용도로 혹은 광장의 확보였다. 사람들로 물결치는 거리의 모습은, 우선 차를 통제한 보행자의 도로일 때 가능했다. 차량이 줄어들자 도시에는 시장이 서고 공연이 펼쳐졌다. 선거철에는 각종 연설과 토론의 무대도 생겼다.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머물고, 앉기 시작했다. 도시 전체가 시민들을 위한 거실처럼 변했다. 이제 코펜하겐은 세계에서 가장 긴 보행자의 도로를 가진 도시가 됐다. 1964년부터 시작된 이 정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994년에 나는 코펜하겐에서 유학 중이었다. 옥외공간은 늘 사람들로 넘쳤다. 커피 한 잔 사 들고 두리번거리면 괜찮은  ‘앉을 곳’은 이미 만석이었다. 햇살이 좋은 곳, 전망이 좋은 곳, 음악이 있는 곳 등 이유도 다양했다.

 

얀 겔 교수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도시의 질은 어떨까? 좋아지고 있다고 본다. 걸어서 접근할 수 없었던 서울 시청과 광화문 앞, 남대문 주변을 지금은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 걷기 좋은 길도 많아졌다.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과 함께 걸으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속설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대표적인 데이트 코스다. 지난 2018년 12월부터 일부 끊어졌던 구간을 모두 개통해 돌담길 전체를 걸을 수 있게 됐다는 기쁜 소식도 들린다. 천만 시민이 사는 서울시내 한복판이지만 운치 있고 한적하다. 자동차의 소음과 경적으로부터 자유롭다. 이 길은 생김새부터 사람을 위한 길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달랑 한 차선인 자동차 도로는 구불구불 휘어져 있고 과속 방지턱이 계속된다. 속도를 낼 수 없다. 자동차 도로보다 넓고 변화무쌍한 보행자 도로는 양옆에서 차들을 압박한다. 길을 가로지르는 보행자들의 발걸음은 활기차고 당당하다. 보행자의 도로에는 고궁의 담벼락을 따라 걷기를 즐기는 시민들과 그 시민들의 발길을 잡으려는 행사들이 가득하다. 유명 가수들의 버스킹 프로그램인 <비긴 어게인 시즌 3>의 첫 촬영도 바로 이곳에서 했었다.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자란 내게 서울은 늘 공사 중이었다. 도로가 넓어지고 차들이 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놀이터, 공원, 골목을 잃었다. 개발논리로 무장한 정책 앞에서 도시의 역사와 삶의 근거가 사라져갔다. 되찾으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했다. 효율성과 경제논리만으로 달려왔던 도시계획을 반성하며 인간을 위한 도시,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도시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80년대까지 독재 정권에 맞선 투쟁의 장소였던 광화문 광장이 2002년 월드컵 때는 축제의 한마당으로 활짝 열리더니, 이제는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담아내는 직접민주주의의 현장으로 활용된다. 고정관념도 뛰어넘는다. 광화문, 서울역 앞에서 서초동, 여의도로 확산된다. 공간의 생김새, 쓰임새보다는 하고자 하는 말의 목적에 가까운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앉는다. 어디에 앉을까? 의자나 벤치도 좋지만 볼라드(보행자용 도로에 자동차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장애물), 계단, 돌, 바위, 나무의 그루터기 등도 좋다.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머물고 싶은) 환경이 조성되면 도시의 모든 지형지물은 우리를 위한 의자로 기꺼이 변신한다. 때론 진짜 의자보다 더 사랑받는다. 인간의 손에 의해 다듬어지지 않은, 주변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 눈에 띄려고 하지 않는 겸손한 의자들이다. 도시가 거실이 될 때, 그들은 시민의 ‘앉는 곳’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사진 1> <사진 2>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도시의 모든 지형지물은 우리를 위한 의자로 기꺼이 변신한다. 때론 진짜 의자보다 더 사랑받는다.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 실내디자인전공
김진우, jinwookim@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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