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학   교육   법률   경제   일반   뷰티   문화   육아   스포츠   아이별   요가   택견   인테리어   요리   커피 

  • [일반] <여성들, 바우하우스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양현모기자
  • 19.10.24 09:54:09
  • 공감 : 0 / 비공감 : 1
공감 비공감


 

 <여성들, 바우하우스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독일 여행 중에 바우하우스와 관련된 몇 권의 신간을 발견했다. 독일의 디자인학교 바우하우스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여성 디자이너, 아티스트, 마이스터(공방의 책임자, Meister)에 관한 기록이었다. 바우하우스의 탄생지인 독일에서도 10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주목하기 시작한 그들의 이야기가 놀랍고 신선했다. 펼쳐든 책 중 하나인 <Bauhaus Women: A Global Perspective>(Elizabeth Otto, Patrick Rössler 저, Herbert Press, Bloomsbury Publishing 출판, 2019). 흑백필름 속 그녀들은 주로 텍스타일 작업장에 있었다. 거기서 나는 발음마저 낯선 군타 슈톨츨(Gunta Stölzl, 1897-1983)을 만났다. 디자이너들에겐 익숙한 한 장의 사진<사진 1>. 1926년, 데사우(Dessau) 바우하우스 옥상에서 촬영된 13명의 바우하우스 마이스터들 중 유일한 여성. 슈톨츨은 100살이 된 바우하우스가 이제부터라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기록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 1902-1982)의 강관의자<사진 2>. 가구 디자인사에 한 획을 그은 제품이다. 슈톨츨은 바로 그 의자를 위한 직물을 디자인하고 개발했다. 브로이어는 바우하우스 초대 교장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의 제자다. 1920년부터 1924년까지 목공 워크숍의 견습생을 거쳐 1925년 데사우 바우하우스의 워크숍을 맡았다. 당시의 의자는 주로 목재 골조에 쿠션과 천을 입힌 것이었다. 소파를 상상하면 된다. 쿠션의 양과 질, 장인의 손맛이 의자의 질과 편안함을 결정한다. 제작 과정이 길고 가격은 비쌌다. 하지만 브로이어의 의자는 달랐다. 시대의 고정관념을 깼다. 산업혁명이 가능케 한 기술을 일상용품 디자인에 접목했다. 수공예에서 대량생산으로, 소수의 의자에서 다수의 의자로 역사의 문을 열었다.

 

브로이어의 의자는 강철관(tubular steel)을 구부려 만든 캔틸레버(cantilever) 구조다. 4개의 다리가 좌판 아래 수직으로 내려오는 방식이 아니라 ㄷ자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다. 앉아 있는 사람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 의자는 가볍고 날렵하고 견고했다. 규격화가 가능했고 생산과 조립이 쉬웠다. 가격대를 낮출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구조는 좌판과 등받이에 사용된 직조를 빼면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인간의 몸을 만나 체중을 지탱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직조 부분이기 때문이다. “광택 가공 면직물과 철사(Eisengarn)로 만든 이 직물은 착석한 사람을 편안하게 지지해 줄 만큼 유연하고 내구성을 갖추고 있다.(안영주,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 p152)” 하나의 디자인이 완성된 다음 이후 이뤄지는 마감재나 색채에 대한 코디네이션 영역을 폄훼하고 부가적으로 여기는 견해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이 경우는 아예 절반을 모른 척해 버린 것 아닌가. 캔틸레버 구조인 브로이어 의자에서 직조 개발자의 노력과 성취가 무시돼 왔음이 놀랍다. “데사우로 이전한 이후 바우하우스의 직조는 실험과 탐구를 거듭하면서 산업화에 적합한 현대적인 직물로서 그 기술력을 증명했음에도 말이다.(안영주, 같은 책, p152)” 브로이어의 상징적이며 역사적인 의자를 논할 때 마다 슈톨츨의 이름과 역할이 언급되지 않았음은 우연이었을까? 내가 과문한 탓이었을까?

 

답답하던 차에, <바우하우스와 현대 생활 전>(금호미술관, 2019.08.13-2020.02.02)을 찾았다. 미술관의 도슨트는 슈톨츨을 포함, 바우하우스에서 간과돼 왔던 여성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앎의 욕구가 용솟음쳤고, 안영주 선생의 책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안그라픽스, 2019)>를 만났다.

 

100년 전 바우하우스는 진보적인 교육을 표방했다. 그들의 선언문은 명징하고 확고했다. 고작 14년간 지속됐던 바우하우스의 영향력이 여전히 건재한 이유 중 하나다. 여성들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줬고 무수히 많은 여성들이 입학했다. 하지만 입학 후 그들에겐 전공 선택의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여학생이 바우하우스의 마이스터가 되는 것도 드물었다. 마이스터가 됐다 해도 계약조건에서 불이익과 차별을 겪었다. 문제 제기를 한 여성들이 오히려 비판의 화살을 받았다.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 원인을 학교가 아닌 여성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프레임에 갇히기도 했다. 

 

젠더 문제에 있어서 바우하우스는 진보적이지 않았던 걸까? 혹은 여학생에게 입학의 기회,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진보적이었다고, 100년 전 남성 마이스터들은 믿었던 것일까? 역사적 사건은 시대적 상황과 함께 고찰해야 한다.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생각해 본다. 여성에게 선거권이 언제부터 주어졌던가? 가장 빨랐던 남오스트레일리아가 1894년, 유럽의 핀란드 대공국이 1905년, 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1920년, 우리나라는 1948년이다. 길어야 120여 년의 역사다. 차별을 깨는 역사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느리게 진보한다. 100년 전 바우하우스를 현재의 기준으로 볼 순 없다. 그러므로 나는 바우하우스의 선언이 진보를 표방했음을 의심하진 않는다. 선언과 실천 사이의 커다란 간극이 있었을 뿐. 그리고 당시의 기득권자들은 차마 인식할 수 없었을 뿐. 

 

내가 궁금한 것은 100에서 14를 뺀 나머지 세월이다. 바우하우스는 폐교했지만 영향력은 현재진행형이다. 논문, 책, 연구 자료 등이 줄을 잇는다. 그 사이에 시대적 변화에 걸맞은 시선과 관점이 있었던가? 젠더 감수성에 대한 당시의 기준을 비난하고 비판함을 넘어, 그러한 기준이 왜 그때는 별문제 없이 통용됐는지,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왜 직조 공방으로 가게 됐는지, 왜 그들은 목조 공방으로 갈 수 없었는지, 그걸 강요한 구조와 제도는 무엇이었는지, 나부터 왜 질문하지 않았을까?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브로이어의 의자에 사용된 직조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직조 공방에서 만들어질 수도 있었음을. “나는 결혼으로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아. 그리고 나의 남편에 따라 내 가치가 부여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Anja Baumhoff, Gender, Art, and Handicraft at the Bauhaus, Ph D. Dissertation,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1994, p.173, 각주 112참조)”라고 슈톨츨에게 털어놨던 바우하우스 직조가인 베니타 코흐 오테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안영주, 위의 책, p157에서 재인용)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왜곡과 편집도 가능하다. 하지만 역사는 현재와 부딪히며 살아 움직이는 동안 가장 약했던 고리를 되살려내기도 한다. 그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바우하우스에선 ‘여성들’아닌가싶다.

 

<사진 1> 데사우(Dessau) 바우하우스 옥상에서 촬영된 13명의 바우하우스 마이스터들. 우측에서 두 번째 유일한 여성이 군타 슈톨츨이다. 그녀는 100살이 된 바우하우스가 이제부터라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기록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사진 2>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 1902-1982)의 강관의자. 강철관(tubular steel)을 구부려 만든 캔틸레버(cantilever) 구조다. 그런데 이 구조는 좌판과 등받이에 사용된 직조를 빼면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브로이어의 상징적이며 역사적인 의자를 논할 때 마다 슈톨츨의 이름과 역할이 언급되지 않았음은 우연이었을까?
©Jinwoo Kim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 실내디자인전공
김진우, jinwookim@kku.ac.kr




Tags :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  
2020 인구주택총조사 시범예행조사 실시! 본 조사도 아닌데, 왜 해야 하는 걸까?64회
엄마가 잠을 못 들고 우울해해요. 갱년기인가요?63회
사회조사분석사, 빅데이터분석기사, ADSP까지! 통계 관련 자격증을 소개합니다61회
입덧56회
<바우하우스 정신, 휴머니티>54회
수학 자신감53회
신사업 아이디어 <한의원+건강한 카페 복합 공간>48회
<도시에도 의자가 있다>40회
식이장애30회
뇌 과학이 밝히는 지능의 세계27회
월 4일부터 시작되는 농림어업총조사 시범예행조사를 소개합니다!0건
염좌0건
뇌 나이를 젊게하는 오만가지 방법 중 몇 가지0건
<도시에도 의자가 있다>0건
이름이 뇌에게 말해준 비밀0건
후두염0건
사회조사분석사, 빅데이터분석기사, ADSP까지! 통계 관련 자격증을 소개합니다0건
뇌 과학이 밝히는 지능의 세계0건
식이장애0건
<바우하우스 정신, 휴머니티>0건
월 4일부터 시작되는 농림어업총조사 시범예행조사를 소개합니다!0점
염좌0점
뇌 나이를 젊게하는 오만가지 방법 중 몇 가지0점
<도시에도 의자가 있다>0점
이름이 뇌에게 말해준 비밀0점
후두염0점
사회조사분석사, 빅데이터분석기사, ADSP까지! 통계 관련 자격증을 소개합니다0점
뇌 과학이 밝히는 지능의 세계0점
식이장애0점
<바우하우스 정신, 휴머니티>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