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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구글 맵이 평정해 버린 시대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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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양현모기자
  • 19.09.05 10: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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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번역 앱, 급하고 답답할 때 요긴했다. 동시통역기가 곧 세상을 평정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 같은 사람에게도 확장된 기회와 가능성이 열리리라. 해외여행에서의 편리함은 덤으로 따라오고.

 

하지만 세상은 늘 그렇듯 내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최소한 해외여행 중엔 그렇다. 나의 최근 경험에 의하면 이젠 아예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과 구글 맵 덕분이다. 구글 맵은 여행자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한다. 목적지를 입력하면 운송 수단별로 가는 법은 알려주고, 열차나 버스의 번호, 시간표, 정류장 위치, 플랫폼, 소요되는 비용까지 제공한다. 물론 예약도 할 수 있다. 10대 후반인 딸아이는 처음 가는 도시 골목 속 깊숙이 박혀있는 진짜 로컬 식당들을 쏙쏙 찾아냈다. 안 되는 현지어로 낯선 이의 친절을 구걸할 이유도, 관광객들만 바글거리는 식당에서 실망할 필요도 없다. 디지털 혁명이 선사한 편리함이다. 이제 여권과 함께 반드시 사수해야 할 목록은 스마트폰, 셀룰러 데이터, 보조 배터리다.

 

여행의 이유를 생각해 본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남, 낯선 것(사람)들과의 조우, 설렘과 불안의 공존, 기대와 실망의 교차, 그 과정에서 나는 내 것이라 생각 못 했던 초라한 인성과 얄팍한 자존감을 원 없이 만난다. 아프지만 그런 나와 한바탕 맞짱을 뜨고 나면 압축 성장한 느낌이다. 돈을 들인 대신 시간을 번 느낌이랄까? 나이를 먹는다고 다 괜찮은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여행으로 비껴 산 세월 속에선 성찰의 유속이 다소 빨라지는 것 같다. 그 뻐근한 느낌이 좋아서 나는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구글 맵 덕분에 많은 부분이 예측 가능해졌다. 당황하거나 뚜껑이 열릴 확률이 줄었다. 우아한 지식인, 어른, 엄마의 포스를 유지하며 여행을 마치리라 기대했다. 여행의 맛은 좀 싱거워졌지만 멋은 좀 누릴 것 같았다. 성공했을까? 10대 후반인 딸과 단둘이 떠난 4개월이 넘는 여정, 구글 맵이 결코 커버할 수 없는 감정적 사건사고가 얼마나 많았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이번 여행의 원래 목적은 ‘쉼표 찍기’였다. 멈추고, 생각하며, 게을러지기. 상반기에 마무리해야 할 글들이 몇 개 있어 연구 학기를 신청했다. 마침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아이는 일종의 Gap year를 갖고 싶다고 했다. 이태리에서 3년간 머물며 소설을 썼던 하루키를 흉내 내는 심정으로 딸과 함께 유럽행을 결정했다. 마침 코펜하겐에 사는 지인이 집을 빌려줬다. 안전하고 아름다운 지역에 널찍한 마당을 품은 타운하우스. 게다가 지인은 명품 가구와 그림 수집이 취미인 지라 숙소는 그야말로 살림살이가 있는 갤러리다. 눈을 뜨면 매킨토시, 리트벨트의 의자가 보였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고개를 돌리면 피카소와 아르프가 반긴다. 버킷 리스트에 있을 법한 장면 아닌가?

 

하지만 몇 주 만에 우리는 독일로 내려왔다. 숙소는 타운하우스에서 10평짜리 원룸으로 쪼그라들었다. 명품 가구는커녕 열악한 매트리스에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이유는 나였다. 천국 같은 환경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일주일이 지나자 슬슬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자료를 뒤지다 만나는 작가의 작품전이 옆 나라에서 진행 중이다. 쓰고 있는 칼럼에 사례로 든 건축물은 비행기로 몇 시간이면 닿는다. 학창시절 시간에 쫓겨 발길을 돌려야 했던 바로 그 건물들이 일일생활권 안에 있다. 유럽까지 비행기 값이 얼만데, 어떻게 얻은 시간과 기횐데, “코펜하겐 변두리”에 처박혀 “글만” 쓰고 있을 순 없다. 급 초조했다. 설득과 협박을 적당히 버무려 딸과 함께 독일로 내려왔다.

 

일주일 만에 뒤집힌 여행의 콘셉트는 전쟁의 씨앗이었다. 다행히 그 전쟁은 한 달 정도에서 멈췄고, 중간에 각자 귀국할 뻔한 위기를 넘어, 앞으로 여행만은 따로 하자는 쿨한 다짐을 지나, 다음에도 꼭 같이 오자는 닭살 돋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 달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황당하고 이기적인 내 모습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다. 딸은, 전공이 같은 사람들, 혹은 혼자 하던 여행 중에는 알 길 없던 내 습관, 버릇, 태도를 끊임없이 일깨웠다. 여유 있게 유럽의 문화와 음식을 즐기자던 다짐을 꿀떡 삼켜버리고도 사과와 양해를 구하기는커녕, 끼니를 건너뛴 채 건축물을 향한 행진을 강요했던 뻔뻔함. 공원 걷고 사진 찍고 맛 집을 찾아 즐기는, 느리고 조용한 딸의 여행 패턴에 대한 폄훼와 무시, 너 나이에 이게 얼마나 큰 혜택인지 아느냐는 맥락 없는 훈계, 내가 좋다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바로 폭력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이 상황은 예외일 수밖에 없다는 기발한 부모 표 당위성이 아침마다 생성됐다. 딸아이를 달달 볶아댔고 한 달여의 시간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내 몸에서 나온 철저한 타인, 하나부터 열까지 나와 닮은 점이라곤 없는 존재, 그 딸과의 여행에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외침은 내 인격으론 실천 불가능했다.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다리로의 여행이 가장 긴 여행이라 시던 신영복 선생의 말씀은 진리 중의 진리였다. 그래도 일단 보이기 시작하자 타협이 가능했다. 나는 조금씩 느려졌고 딸아이는 조금씩 빨라졌다. 서서히 숨통이 틔었고 접점이 생겼다.

 

유사한 전공, 관심사, 여행 습관을 가진 자들과의 여행은 편하다. 그렇게 모인 집단에도 온갖 종류의 차이와 다름이 솟구친다. 하물며 외계인 같은 10대 딸과의 여행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구글 맵이 선사한 편리함 덕분에 여행의 맛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결핍을 동행자에게서 찾을 수 있겠다. 사랑하지만 이질적인 존재와의 여행. 일상을 벗어난 그곳에서 다시 한 번 제대로 된 나의 민낯을 만난다.

 


<사진 1> 이번 여행의 원래 목적은 삶에 쉼표 찍기였다. 멈추고, 생각하며, 게을러지기.
ⓒ Jinwoo Kim

 

 

 

<사진 2> 사랑하지만 이질적인 존재와의 여행, 그 과정에서, 내 눈에는 안 보이는 것들을 보는 타인을 만난다. 
ⓒ Bia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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