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유적지] 제 4편 우리 동네 보물창고, “충주시 엄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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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양현모기자
  • 19.08.23 08: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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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떠나는 여행, 우리 동네 문화재를 찾아서

 

제 4편 우리 동네 보물창고, “충주시 엄정면”

 

여행은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힐링의 수단이다. 단순하게 먹을거리부터, 체험, 즐길 거리 까지 다양한 방식의 여행들은 우리 삶의 활력소가 된다. 멀리 떠나지 않고 우리 지역 가까운 곳이라도 잠시 일상을 내려놓는 여행을 떠나면 힐링의 의미는 두 배가 된다. 이렇게 즐거운 여행에 의미까지 더해지면 어떨까? 바로 문화재 여행이다. 수많은 관광주제가 있지만 이 만큼 의미가 깊은 것도 없다. 단순하면서도 의미 있는 우리지역 문화재 여행, 떠나보자.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주소 : 충북 충주시 엄정면 내창로 617-80 ‘백운암’
주요 문화재 :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보물 제 1527호)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보물 제16호)
                   충주 경종 태실(충북유형문화재 제6호)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충북유형문화재 제225호)
                   충주 윤양계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135호)

 

문화재 특집 제 4편은 지역 자체가 보물창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충주시 엄정면이다. 엄정면은 작은 마을이지만 여러 문화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지역이라 특별히 엄정면을 방문하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우리 지역에 있는 문화재를 관찰하기 위해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백운암은 1886년 무당의 신분으로 진령군이라는 작호를 받아 여자 대감이 된 윤씨에 의하여 창건된 사찰로 전해진다. 이 사찰에서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이 철불은 원래 이곳에서 전하던 불상은 아닌데, 인근에 고려시대 대규모 사지인 억정사지(億政寺址)가 있어서 아마도 이곳에서 옮겨온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예로부터 충주는 철의 산지로 백운암의 철조여래좌상 이외에도 대원사의 충주철불좌상(보물 제98호)과 단호사의 철불좌상(보물 제512호)이 있어서, 이 세 구의 철불은 충주 지방의 3대 철불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물 제1527호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8세기 석굴암 본존상 이래로 유행한 편단우견(偏袒右肩)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여래 좌상으로 높이 87㎝정도의 크지 않은 상이다. 얼굴은 몸 전체에 비해 작은 편이나 이목구비의 표현이 뚜렷하고 근엄한 표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한편, 철조여래좌상은 비교적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특징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충주 지역 철불 중에서는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상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호도 원만하며 전체적으로 크게 손상된 부분이 없고 조각 양식도 좋은 편으로, 통일신라시대 이래 철불 연구에 매우 중요한 상이다.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보물 제16호)

 

 

억정사지(億政寺址)에 전해오는 비(碑)로, 고려의 승려인 대지국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직사각형의 비받침 위에, 비문을 새긴 몸돌을 올린 단순한 형태로, 몸돌 위쪽의 양 끝을 사선으로 잘라냈을 뿐 다른 꾸밈은 없다. 비 몸돌의 네 면에는 해서체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친 과도기적 작품으로, 조형상으로는 간략한 형식이다.

비문에는 대지국사가 고려 충숙왕 15년(1328)에 태어나 14세에 출가하고 공양왕 2년(1390)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을 기록하고, 대사의 인품과 학력을 기리는 내용이 실려 있다. 비문은 박의중이 짓고, 승려인 선진이 글씨를 썼으며, 혜공이 새겼다. 힘차고 굳센 필체로 짜임도 우수하다.

 

◆충주 경종 태실(충북유형문화재 제6호)

태실(胎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모시는 곳으로, 이곳은 조선 경종대왕의 태를 모시고 있었다. 대개는 태항아리 안에만 두는 것이 보통이나, 왕세자나 왕세손 등 왕위를 이어받을 사람의 태는 따로 돌방을 만들어 그 안에 넣어두게 한다.

 

 

이 태실은 8각의 낮은 받침돌 위로 둥근 돌방을 올리고 8각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 옆에 태실비를 세워 놓았다. 영조 2년(1726) 왕의 명을 받아 태실 주위에 8각형 돌난간을 두르고 비석을 세웠으며, 순호군 16명을 두고 3년마다 제사를 올렸다.

 

숙종 14년(1688) 희빈 장씨가 왕자를 낳은 후 이 곳에 처음 마련해 두었으며, 일제강점기에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다른 곳에 옮겼던 것을 1976년에 제자리로 옮겨 복원해 놓았다. 돌방 안에 있던 태항아리는 일제강점기 때 창경궁으로 옮겨가고, 이곳에는 석조물과 태실비만 남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충주 추평리 삼층석탑(충북유형문화재 제225호)

 

 

충주 추평리삼층석탑은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고려시대에 건조된 일반형 석탑으로 주변일대에서 수습되는 자기(磁器)와 와편(瓦片)으로 보아 고려조에 번창했던 사찰(寺刹)로 추정되며 탑신(塔身)의 우주(隅柱)표현, 전각(轉角)의 반전으로 보아 신라시대 양식을 이어 받으면서 다소 변형된 고려 초기 탑의 양식을 고찰할 수 있는 석탑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한편, 추평리(楸坪里) 탑평(塔坪) 마을에 위치하며 탑 주변의 경작지와 인근 민가일대까지 주초석과 많은 기와들이 나오고 있다. 또한 추평리사지의 암자로 추정되는 뒤쪽 8부 능선상에도 많은 기와가 확인되고 있다.

 

◆충주 윤양계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135호)

병마절제도위 윤양계가 1873년(고종 10)에 건립한 집으로, 앞으로는 하천이 흐르고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둘러싸고 있다. 원래는 대문과 행랑채에 나 있던 중문을 통해 사랑채로 출입하였는데, 행랑채와 중간 담이 모두 무너져 현재는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채로 출입할 수 있다.

 

 

이 집은 건물의 배치에서 독특한 점이 살펴지는데 앞쪽에 넓은 마당을 두고 '一'자형의 안채를 중심으로 안채와 직각으로 서쪽에 아래채를 두고 동쪽에 사랑채가 안채와 거의 병렬로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는 안채를 가로막고 서있는 것과 달리 안채의 동쪽에 비켜 앉아 별당처럼 되어 있다. 이렇게 사랑채와 안채가 일렬로 배치되는 경우도 흔치 않지만 안채 규모만한 아래채가 안마당에 별도로 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아쉬운 점은 이곳은 소유주 등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기자가 직접 방문했을 때도 문이 굳게 잠겨 있어 실제 내부의 모습은 관찰하지 못했다. 윤양계 고택 관람이 예정되어 있다면 이 점을 참고하면 된다.

 

참고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취재:양현모기자/m1236@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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