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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에게 가는 두 번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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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양현모기자
  • 19.08.08 08: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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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쾰른에 처음 도착했던 날의 기억이다. 중앙역에 기차가 들어서자 검은색 대성당(Kölner Dom)이 드라마틱 하게 등장했다. 복잡하고 어두운 역사(驛舍)의 통로를 빠져나오는 동안 잠시 눈에서 사라졌던 성당은, 메인 홀 유리 벽 너머로 다시 한번 들이닥친다. 얼떨결에 영화의 결론부터 봐 버린 느낌이랄까? 탄성과 탄식이 동시에 터진다. 나는 대성당 앞 계단에 우두커니 앉아 생각을 정리한다. 탄식의 원인은, 거대한 무언가를 보기 전 미처 숨을 고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대성당은 중앙역과 인접해 있다. 일부러 동선을 돌려놓지도 않았다. 왕족들의 편리함을 고려한 배치였다. 덕분에 나 같은 관광객과 대성당의 첫 만남은 번개처럼 이뤄진다.

 

쾰른을 다시 찾았다. 이번 방문의 목적지는 대성당이 아니다. 페터 춤토르의 콜룸바 뮤지엄(Kolumba museum). 직접 경험해 봐야 안다는 춤토르 작품에 대한 공부의 연장선이었다. 지금의 콜룸바 뮤지엄 사이트에는 세인트 콜룸바(St. Kolumba) 성당이 위치해 있었다. 중세 도시 쾰른에서 가장 큰 교구였다. 1943년, 성당은 폭격으로 거의 파괴된다. 종전 후, 역사적 사이트 복원에 대한 지역의 염원은 컸다. 마침내 1949년, 일명 “폐허 위의 마돈나(Madonna in the ruins)”가 세워진다. 독일 건축가 고트프리드 뵘(Gottfried Böhm, 1920- )이 설계한 후기 고딕 양식의 채플이다.

 

그리고 2007년, 이 자리에 춤토르의 콜룸바 뮤지엄이 섰다. 세인트 콜룸바의 역사와 상처, 마돈나 채플을 동시에 품은 건축이었다. 외관은 춤토르 특유의 덤덤한 박스 형태. 하지만 한 걸음 다가가면 사이트의 역사를 물성으로 풀어 낸 건축가의 내공이 읽힌다. 건축가는 기존의 잔해와 현대건축의 외피를 이어 붙였다. 이들이 서로 싸우지 않기 위해, 덴마크의 피터슨 테글(Petersen Tegl)이 수작업으로 제작한 회색 벽돌을 찾아냈다. 그는 폐허에서 채취한 암석과 벽돌 조각 등을 테글의 벽돌과 함께 쌓아 올렸다. 벽돌 쌓기라는 특별할 것 없는 시공방법이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거쳐 풍성해졌다. 입면의 수평적 마티에르와 불규칙한 구멍들은 무심한 박스의 내외부에 과하지 않은 변화를 준다. 사이트와 재료에 충실한 것만으로도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춤토르의 말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티켓을 구매한 다음 생각한다. 어떤 순서로 볼 것인가? 세인트 콜룸바의 잔해, 중세 시대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야외정원,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됐던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의 조형물 등 스틸 사진으로 본 매력적인 장면들이 스쳐갔지만, 막상 현장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좁고 긴 내부의 계단실이었다.

 

이 뮤지엄에는 감정을 정리하고 다스리고 일시 정지할 수 있는 공간적 장치가 풍부하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듬직한 가죽 벤치는, 오래오래 쉬면서 머물고 감상해도 좋다며 발목을 잡는다. 그렇게 올라간 뮤지엄 3층에서 나는 쾰른 대성당을 다시 만났다. 뮤지엄 창문을 액자 삼아 여전히 높고 아름다운 대성당이 걸러있다. 창문 앞에서 나는,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처럼 설렌다.

 

뮤지엄 전시실의 내부는 그 이상 간결할 수 없다. 천정고의 높이, 대담하게 뚫린 창문, 혹은 폐쇄적인 입면과 하늘을 향해 열린 높은 유리창 등이 각각의 특징과 변화의 전부다. 뮤지엄 설계의 방향을 건축적 외관이 아닌 전시장의 주인공인 예술품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전시 방법이 독특한데, 기획이나 작품에 대한 설명이 없다. 전시물의 시대적 범위는 고대부터 현재에 이른다. 오래된 성화와 아방가르드 한 예술품이 뒤섞여 있다. 그림, 조각, 장식예술 등 다양한 장르가 공존한다. 마침내 관람자는 작품과 제대로 마주한다.

 

세인트 콜룸바 유적지의 입구는 1층에 있다. 검고 무겁고 두툼한 커튼을 열고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1, 2층으로 뚫린 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 유적의 잔해 위로 건축가가 만들어 놓은 지그재그 산책로가 있다. 꺾인 길을 걸어 폐허의 현장에 다가간다. 감싸고 있는 건축의 벽체는 역사적 현장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이 분명히 보인다. 개방형 벽돌(filter wall)을 타고 부서져 들어온 빛의 조각들이 폐허의 처참한 질감을 어루만진다. 실내에 있지만 외부의 차 소리, 대화소리, 자전거의 따르릉 소리가 선명하다. 과거와 현재, 거침과 부드러움, 내부와 외부, 감각과 감정, 빛과 그림자가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현장이다. 콜룸바 뮤지엄 공간 여행의 클라이맥스다

 

중정으로 나왔다. 바닥에 깔린 자갈을 밟는 아스락 소리가 클라이맥스에서 내려오는 내 감정을 쓰다듬는다. 청각(소리)과 촉각(발바닥의 감촉)이 주는 위로다.

 

덕분에 내 감정을 복기할 수 있는 여유와 힘이 생긴다. 몇 시간 동안 보고 느끼고 들었던 것들을 연결하고 해체해 본다.

 

콜룸바 뮤지엄에 머물렀던 시간은 하루 한나절. 하지만 자료, 지식, 감정이 명확해져 글이 되기까지는 몇 주의 시간이 걸렸다. 확인해 보고 골라야 할 단어들이 태산이었다. 읽어야 할 텍스트는 끝도 없이 등장했다. 로마시대와 중세 시대부터 이어진 세인트 콜룸바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 폭격을 맞았던 1943년의 상황과 사라졌고 남겨졌던 것들, 마돈나 채플의 건축과 이후 이 곳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천 년 세월에 걸친 로마 가톨릭 대교구의 컬렉션에 담긴 사연과 기획전의 콘셉트, 거기에 춤토르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찾아봐야 했던 다른 프로젝트들까지.

 

사전 공부를 위해 읽었던 글들은 난해하거나 막연했다. 난해한 글은 못 쓴 글이고, 막연한 글은 미완성인 글이라고 생각 해 왔다. 읽으면서 내내 투덜댔다. 내가 써 보니 이유를 알겠다. 춤토르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딛고 선 사유의 지평이 방대했다. 장인 정신, 현장, 실존으로 뭉쳐진 그의 논리는 구체적이고 짱짱했다. 대충 이해하고 쓰려니 글의 스텝이 꼬였다.

 

뒤늦게 시작한 춤토르 공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 라며 꼬리를 내린다. 난해하고 애매한 글이 솔직하지 않으면 더 대책 없을 테니. 그러므로 쾰른 대성당과의 재회를 선물로 받았던 춤토르를 향한 두 번째 여정, 콜룸바 뮤지엄은 (일단) 여기까지.

 

<사진 1> 건축가는 기존의 잔해와 현대건축의 외피를 이어 붙였다. 이들이 서로 싸우지 않기 위해, 덴마크의 피터슨 테글(Petersen Tegl)이 수작업으로 제작한 회색 벽돌을 찾아냈다. 그는 폐허에서 채취한 암석과 벽돌 조각 등을 주재료인 벽돌과 함께 쌓아 올렸다. 벽돌 쌓기라는 특별할 것 없는 시공방법이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거쳐 풍성해졌다. ⓒJinwoo Kim

 

 

<사진 2> 세인트 콜룸바 유적지. 과거와 현재, 거침과 부드러움, 내부와 외부, 감정과 감각, 빛과 그림자가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현장이다. 콜룸바 뮤지엄 공간 여행의 클라이맥스다.ⓒJinwoo Kim

 

 

<사진 3> 중세시대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야외정원. 바닥에 깔린 자갈을 밟는 아스락 소리가 클라이맥스에서 내려오는 내 감정을 쓰다듬는다. 청각(소리)과 촉각(발바닥의 감촉)이 주는 공감과 위로다. ⓒJinwoo Kim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 실내디자인전공
김진우, jinwookim@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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