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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빌라 사보야(Villa Savoye)에서 하루를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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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양현모기자
  • 19.07.11 09: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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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사보야, 드디어 왔다. 2019년 5월 13일. 파리 Saint Lazare 역에서 Gare de Poissy로 출발하는 기차표랑 입장권도 인터넷으로 미리 구매했다. 역에 내린 다음 빌라 사보야까지 가는 1.7km의 길은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오전 10시,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 내부를 거닌 다음 점심시간에는 마당의 잔디밭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잠시 낮잠을 잤다. 스케치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했다. 날씨도 화창했다. 오후에 다시 들어간 내부에는 다른 각도와 색채로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가 놓여있었다.

 

1994년 7월, 덴마크에서 유학 중, 중간 방학에 우리는 파리로 떠났다. 일정 중 하루 빌라 사보야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일이 자꾸 꼬였다. 기차를 잘 못 타고 놓치고 길을 잃었다. 겨우 도착한 빌라 사보야의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푹푹 찌는 날씨와 짜증났던 과정에 지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들 문 앞에 주저앉았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금 진정된 다음, 주변이라도 한 번 둘러보고 가자는 친구의 말에 하나둘씩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그런데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으로 주변을 걷던 우리의 눈에 철망에 뚫린 개구멍이 보였다. 잠시 침묵 속에 몇 초간 서로를 쳐다보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개구멍을 통과해 순식간에 안으로 튀어 들어갔다.

 

경비가 호루라기를 불며 나타날 것 같다거나, 아예 총을 쏠지도 모른다는 누군가의 혼잣말이 들리긴 했으나, 군중심리였을까? 우리는 생각보다 용감했다. 당연히 내부는 볼 수 없었지만, 사진으로만 보며 배웠던 건물의 실체가 코앞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흥분되고 설렜다. 불안한 마음에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고 느끼고 싶다는 절박함으로 정신없이 마당을 뛰어다녔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갑자기 천천히 흐르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인 느낌이 든다. 마지막 친구까지 무사히 빠져나오고 나서 우리는 큰소리로 한바탕 웃었다. 뭔지 모를 승리감으로 충만했다. 하루 종일 이어지던 불운을 한꺼번에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은 각자가 느꼈던 이야기들로 풍성했다.

 

1928년부터 1931년 사이에 지어진 이 건물은 거장 르 코르뷔제(Le Corbusier)와 그의 사촌 피에르 잔네르(Pierre Jeanneret)의 작품이다. 현대 건축의 5원칙과 그 원칙을 실현한 이 건물은 인터네셔날 스타일(International style)의 표본으로 건축과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에겐 반드시 숙지해야 할 사례다. 나보다 먼저 이곳에 다녀간 사람들이 부지기수며, 이 건물에 대한 논문, 칼럼, 기사 등은 이미 차고 넘치므로 나까지 뒤늦게 몇 자 보탤 생각은 없다. 게다가 지난 2016년 12월 6일부터 2017년 3월 26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렸던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제 전(展)>에서 우리는 빌라 사보야의 모형과 내부의 동영상까지 볼 수 있었다.

 

25년 전, 외관만 잠시 봤던 아쉬움에 대한 보상 심리였을까? 나는 하루를 온전히 그곳에서 보내기로 계획했다. 원 없이 시간을 보낸 다음 충만함을 안고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날 나는 두 그룹의 프랑스 초등학생 단체를 만났다. 한 팀당 약 12명 정도. 인솔 교사는 팀당 3명. 그들은 오프닝 시간인 10시경 입장해서 12시경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먹고 쉬다가 오후 2-3시경 기념 촬영을 한 후 떠났다. 처음 도착한 그들은 마당에서 약 1시간 정도, 함께 온 선생님으로부터 건축가와 건축물에 대한 배경 설명을 들었다. 이후 그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와 옥상정원부터 투어를 시작했다. 아직 어린 친구들이었으므로, 그룹에서 빠져 나와 딴 짓을 하고, 친구랑 떠들거나 장난치다가 야단맞고, 만지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만지고 싶어 했다. 세계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그 또래 초등학생 모습 그대로였다.

 

마침내 점심시간. 잔디밭에 앉아 삼삼오오 도시락을 먹은 친구들은 빌라 사보야를 배경으로 하나둘씩 뛰어놀기 시작했다. 내가 앉아 있는 벤치로 와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조금 용감한 친구들은 내 스케치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견학할 때 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선생님들도 그제야 다소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을 즐겼다.

 

그들과 한나절을 보내며 생각했다. 내가 저 나이 때, 우리 건축의 가치, 위대함, 원리 등을 직접 보고 느끼고 만지고 경험할 기회를 가졌던가?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1970년대 대한민국, 그때는 현실의 무거움이 너무 커서 그러한 교육의 필요성과 당위성이 수면으로 올라오긴 어려웠을 것이다. 겨울의 학교는 손발이 꽁꽁 얼 만큼 추웠고, 학생 수는 한 반에 70명이 넘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2부제를 했었다. 점심을 거르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현장학습이나 문화예술탐방 같은 단어들은 그야말로 배부른 남의 나라 얘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제법 잘 산다. 소위 선진국이라 분류된 나라로 여행을 해 보면 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지. 그래서 궁금하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어떤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유산들을 실제로 가서 보고 느끼고 그 주변에서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지. 포트폴리오와 입시에 필요해서가 아닌 진짜 현장학습이 이뤄지고 있는지.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만났던 프랑스 초등학생 중 과연 몇 명이나 그날의 견학으로 건축과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리라.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최소한, 자신의 나라에 있는, 건축과 디자인의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남긴 문화유산을 직접 보고 배우고 즐기고 머물렀던 시간을 통해, 그것의 가치와 의미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경험이 없는 친구들보다는 그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건물들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놓일 때, 함께 반대의 목소리를 내주지 않을까?    

 

빌라 사보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보야 가족을 위한 집이었지만, 이후 1965년 국가 소유의 건축물로 공식 지정됐다. 그 사이 이 건물은 몇 번의 철거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 건물은 마침내 2016년 UNESCO World Heritage Sites에 등록됐다. 전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문화유산을 갖기 위해선 그것을 만들 건축가는 물론 보호하고 지켜 내줄 힘과 제도가 절실함을 알게 된다. 25년 만에 돌아가 하루를 보내고 온 나는 바로 그것들에 깊이 감사한다.

 

 

<사진 1> 두 그룹의 프랑스 초등학생들이 오프닝 시간인 10시경 입장해서 12시경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먹고 쉬다가 오후 2-3시경 기념 촬영을 한 후 떠났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저 나이 때, 우리 건축의 가치, 위대함, 원리 등을 직접 보고 느끼고 만지고 경험할 기회를 가졌던가?
ⓒJinwoo Kim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 실내디자인전공
김진우, jinwookim@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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