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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빌바오, 관광객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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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양현모기자
  • 19.06.20 09: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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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훌쩍 뛰어 넘었다. 우리는 예정 보다 길게 머물렀지만, 더 있을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한 동안 살아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이곳은 스페인의 북부, 프랑스 국경에 인접해 있는 도시, 빌바오(Bilbao). 남부 유럽의 친근함과 따스함, 북부 유럽의 세련됨과 차분함이 적당히 합쳐 진 곳 같다. 
 
빌바오는 내게 미뤄 둔 숙제 같은 도시였다.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구겐하임 뮤지엄이 개관한 지 어느덧 22년.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1) 라는 테제와 함께 잘 지은 건축물 하나가 죽어가는 도시를 살렸다는 찬사의 글과 이미지들이 쏟아지는 걸 지켜봤다. 독보적인 조형언어를 표출하는 게리의 건축물이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됐다는 사실이야 어쩜 놀라울 일이 아니었지만, 구겨진 모습으로 길게 엎드려 있는 그의 건축물이 어떻게 인구 40만의 도시를 바꿨다는 건지는 정말 궁금했다.

 

(1)구겐하임 효과라고도 불린다. 세계적 수준의 단일 프로젝트가 한때 거칠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포스트 산업 도시를 부활시킨 촉매제가 된 상황을 상징하는 단어.


결론부터 얘기하면, 구겐하임이 빌바오를 바꿨다는 말은 틀렸다. 시발점이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도시를 바꾼 깨알같이 많은 이유 중 하나다. 구겐하임 뮤지엄과 프랭크 게리도 그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주로 보는 구겐하임은 La Salve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드라마틱한 모습이다. 하지만 발바닥을 땅에 딛고 서서 휴먼 스케일로 바라보면 건물은 의외로(?) 차분하다. 내가 이 도시의 주인공이라고 소리 지르지 않는다. 네브리온(Nervion) 강, 강을 가로지르는 인도교,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놀이터와 공원, 구도심과 연결된 트램과 철로 등 다양한 요소들과 섬세하게 얽혀 겸손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조화를 이룬다. 구겐하임이 도시를 바꿨다기 보다는, 바뀌고 있는 도시에 그 특유의 조형감으로 비집고 들어왔다고 하는 것이 맞다. 외관을 싸고 있는 티타늄 조각들 역시 도시를 이고 있는 하늘의 색채와 조우한다. 낮에는 밝고 부드러웠다가 해가 지면 어둡고 진지한 색채로 변화한다. 구겐하임은 빌바오의 랜드마크가 아니라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여러 친구들 중 하나다.

 

14세기 초에 설립된 빌바오는 19세기부터 철광수출과 제철업을 위한 항구가 발달하면서 스페인의 상업중심지로 성장했다. 20세기 빌바오의 역사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장군을 중심으로 한 격동의 스페인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1930년대 빌바오에서는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ETA, Euzkadi Ta Azkatasuna)이 격렬하게 일어났는데, 1937년 프랑코가 그들을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충돌했다. 1939년, 프랑코는 결국 내전에 승리해 총통이 됐고 1975년 사망할 때까지 독재정치를 이어갔다. 이 시기 빌바오를 포함한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은 복잡했고, 상이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들은 모든 분야에서 격렬히 대립했다. 1970년대 후반, 빌바오를 지탱하던 해운, 철강업마저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도시는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졌다. 도시는 피폐해졌고 사람들은 빌바오를 떠나기 시작했다. 이를 되돌리기 위한 획기적이고 장기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1980년대 중반, 빌바오 지방 정부가 선택한 키워드는 놀랍게도 ‘문화’였다. ‘문화예술 산업을 통한 도시발전 및 경제 부흥 계획’ 만이 도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음을 인식했다. 잘 사는 도시가 아니라 살기 좋은 도시를 목표로 세웠다. 살기 좋은 도시에는 도시 전체를 조망하는 큰 그림과 함께 작고 소소한 디테일들이 필요하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목표한 변화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선 안정된 조직과 자본이 필요했다. 대표적인 것이 빌바오의 도시 재생을 총괄하는 공적기업인 '빌바오 리아 2000(Bilbao Ria 2000, http://www.bilbaoria2000.org)'이었다. 초기 자본 180만 유로에서 출발한 이들은, 정부가 소유한 부지를 적극적으로 개발한 다음 민간 개발자에게 매각하는 방법을 통해 독립적이고 지속가능한 재정구조를 만들어 냈다. 게다가 총 투자 예산의 14%를 EU 보조금으로 조달함으로써 자원을 지속적으로 증가시켰다. 비영리재단인 이들은 부동산에서 창출된 수익을 모두 다시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http://www.bilbaointernational.com/en/i/에서 요약 및 정리)

 

이 자본으로 이들은 구도심에 있는 역사적 건물들을 복원했고, 구겐하임 미술관 건설비의 6배에 달하는 8억 유로를 오염된 강을 되살리는데 투자했다. 노만 포스터(Norman Foster)의 지하철 역사,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 Valls)의 공항 터미널, 세자르 펠리(Cesar Pelli)의 수변 공간 개발 등 유명 건축가들에 의한 프로젝트를 속속 유치했다. 구겐하임 뮤지엄도 이 중의 하나였다. 이 모든 계획과 실행은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관광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빌바오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삶과 그들의 일상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도시는 게리의 건축물과 그 외 유명 건축가의 작품만 휘리릭 보고 지나가선 제대로 감지할 수 없다. 작지만 소중한 가치들이 도시 구석구석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빌바오는 도시 전체가 아름답다. 걷고 싶고 머물고 싶고 살고 싶은 곳이다. 구겐하임 미술관 바로 옆에도, 구도심의 성당 앞 광장에도 어린이들과 가족들을 위한 놀이터와 공원, 앉을 곳, 쉴 곳이 잘 정비돼 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네브리콘 강과 그 주변은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레포츠와 참여할 수 있는 행사들로 가득하다. 프랭크 게리를 몰라도, 뮤지엄의 건축적 가치를 몰라도, 뮤지엄에 전시돼 있는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작품에 대한 지식과 안목이 없어도, 빌바오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설치 조형물의 콘셉트를 몰라도, 뮤지엄 주변에 나와 도시를 즐길 수 있다. 구겐하임 때문이 아니라 주변의 놀이터와 공원, 식당과 카페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이 도시가 살아났음이 명확히 보인다. 덴마크 도시건축가 얀 겔(Jan Gehl) 교수님의 말씀이 다시 생각난다. “People don’t go out to see Architecture, people go out to see other people.(사람들은 건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보기 위해 도시로 나간다.)”

 

마지막으로 이 도시의 매력 두 가지를 더 소개한다. 첫 번째는 신호등. 초록색 보행신호 동그라미 안에 있는 작은 사람이 움직인다. 처음에는 천천히 걷다가 점점 걸음이 빨라진다. 10초가 남으면 더 빨라지다가 5초가 남으면 뛴다. 길을 건너는 사람들도 신호등 안의 작은 초록 사람과 함께 걷거나 뛴다. 안전한 보행을 유도하는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아이디어다. 유럽은 물론 스페인의 다른 도시에서도 보지 못한 신호등이다. 길을 건너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신호등 때문에 웃는다. 다양한 통계가 있지만 성인의 경우 하루 겨우 10번에서 15번 정도를 웃는다고 했던가? 그러니 신호등 때문에 몇 번 더 웃는다는 것, 얼마나 소중하고 기분 좋은 일인가?

 

두 번째는 음식이다. 구도심은 물론 구겐하임 뮤지엄 주변에도 우리 입맛에 맞는 맛 집들이 즐비하다. 당신의 손에 들려 있는 전화기 속 스마트 한 앱들이 여행에 지친 당신의 몸과 마음을 풍성하게 달래 줄 식당으로 인도 해 줄 것이다.

 

여행은 일상으로 부터의 탈출이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결국 내가 살아 내야 할 삶의 일부다.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드라마틱하지 않으며 대부분은 작고 소소한 일상의 반복이다. 그것이 깨지고 방해받고 무너지는 것이 전쟁이고 자연재해고 사건 사고다. 그러니 매일 반복되는 작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당신이 잠시 나마 빌바오의 시민이 될 수 있다면, 빌바오는 무대를 바꿔 지속되는 우리의 삶의 여정에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선사해 줄 것이다. 

 

 

사진 1, 2)우리가 주로 보는 드라마틱한 장면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숨을 멈추게 하는 절경이다.
ⓒJinwoo Kim

 

 

사진 3, 4) 구겐하임 뮤지엄을 발바닥을 땅에 딛고 서서 휴먼 스케일로 바라보면 건물은 의외로(?) 차분하다. 내가 이 도시의 주인공이라고 소리 지르지 않는다. 네브리온(Nervion) 강, 강을 가로지르는 인도교,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놀이터와 공원, 구도심과 연결된 트램과 철로 등 다양한 요소들과 섬세하게 얽혀 겸손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Jinwoo Kim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 실내디자인전공
김진우, jinwookim@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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