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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유럽의 몇 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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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양현모기자
  • 19.05.09 08: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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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파리 여행의 첫 경험은 끔찍했다 . 당시 나는 덴마크에서 공부하는 중이었다. 덴마크는 내가 경험한 최초의 유럽 국가였는데, 그들은 너무나, 누구나, 항상 친절했다. 그러므로 하필 두 나라를 이어서 방문했던 상황 때문에라도 파리 사람들의 불친절함은 유난스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고약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여행하고 싶은 도시 1위 타이틀을 굳게 지키고 있었으니, 불어도 못 하는 가난한 유학생인 데다, 남한인지 북한인지 헷갈리는 나라에서 온 나에게 그들이 친절을 베풀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에펠탑 야경과 주변 공원, 퐁피두센터와 센터 앞 광장, 만화책 <베르사유 장미> 때문에 버킷 리스트에 올랐던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과 프티 트리아농(Petit Trianon), <삼총사> 및 여러 소설의 배경이 됐던 파리의 골목골목을 마침내 걸을 수 있었던 것을 끝으로, 동경의 대상이었던 파리에 대한 숙제는 끝냈다는 느낌이었다.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 없이 파리를 떠났다.

 

세월이 좀 흐른 다음 막 돌이 지난 딸아이와 함께 파리를 다시 찾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내 기억 속의 도시가 맞나 싶었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여성에 대한 그들의 관심, 배려, 친절은 “메리 포핀스”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사실 시작은 파리 행 에어 프랑스 비행기에서부터였다. 이코노미 맨 앞자리 가운데 좌석을 배정받았고 게다가 내 양 옆 좌석마저 비워져 있었다. (요즘엔 아예 추가 비용을 받던데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며 쉴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바로 뒤에 앉았던 점잖은 어르신이 여러 번 스튜어디스를 불러, 비어있는 우리 옆자리에 앉겠다고 요구했지만 직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누군지 아느냐? 원래는 늘 비즈니스를 타는데 어쩔 수 없이 이코노미를 탔더니 별 일 다 보겠다는 등의 말이 넘어왔다.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젊은 여성이 누렸던 특혜를, 비즈니즈를 주로 타던 그분은 용납할 수 없었다. 마침내 포기하며 그가 내뱉은 말은 “말세!”였다.

 

그분이 느꼈을 부당함과는 달리, 유사한 특혜는 파리에 머물렀던 기간 내내 이어졌다. 긴 줄의 화장실이나 박물관 입구에서 우리는 새치기를 허락받아 당당하게 먼저 입장했다. 공원에서 놀고 있으면 영어를 할 줄 아는 상냥한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나타났다. 아이들이 뒤 섞여 노는 동안, 우리가 왜 파리에 왔는지, 한국은 어떤 곳인지, 주변의 어느 식당이나 베이커리가 좋은지, 아이와 함께 꼭 가볼만한 곳은 어딘지 등등의 대화가 오갔다. 처음 며칠은 좀 어리둥절했다. 몰래카메라 같은 것에 속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오줌 냄새나는 파리의 뒷골목이나 지하철도 더 이상 우리 여행의 기쁨과 행복을 방해하지 않았다.

 

파리의 첫인상과 완전히 반대되는 곳이 독일이었다. 깔끔한 숙박시설, 영어로 된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과 사인물들, 불행하고 끔찍한 과거사를 끊임없이 교육하고 상기시키는 건축물과 전시, 독일의 길거리라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Stolpersteine(알쓸신잡 3편에 소개돼 더 유명해진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기리는 작은 돌)에서 볼 수 있듯이, 이웃나라 일본과는 차원이 다른 성찰적 삶을 실천하고 있는 나라. 독일의 도시 곳곳은 너덜너덜해진 행상의 여행자에게도 편안함과 안전함을 선사했다. 게다가 우리에겐 분단국가였다는 공통점마저 있지 않은가? 뭔가 이 나라 혹은 이 나라 사람들과는 닮은 점이 있을 것 같다는 뜬금없이 확신이 생겼다.

하지만 몇 년 뒤 독일 공항에서의 경험은 그러한 확신을 단번에 날렸다. 전 세계의 공항에는 Tax return이라는 제도가 있다. 말 그대로 여행자들에게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나는 물건을 산 영수증만 들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Tax return 창구로 갔다. 그전에 코펜하겐에선 별문제 없이 세금을 돌려받았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영수증과 함께 물건을 보여 달란다. 짐은 모두 부처 버린 다음이었다. 코펜하겐의 사례를 얘기했지만 소용없었다. 깨알만 한 글씨로 꽉 찬 매뉴얼을 보여주며, 영수증과 실제 물건이 일치하지 않는 한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 말만 철석같이 믿고 환불받을 돈을 기대하고 있던 친구들의 눈빛이 간절한 상황에서 그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사무실까지 찾아가 최선을 다해 설명했지만 결국 대답은 “Nein”이었다. 속상한 건 이해하지만 규칙은 규칙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날 유난히 까다로운 독일인을 만났던 걸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유럽에서 샀던 물건들 중에는 이미 그곳에서 사용했던 것들, 친구들에게 선물한 것들도 있었다. 즉, 세금 환불 취지에 적합하지 않은 영수증들이 섞여있었다.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들에겐 당연한 조치였다. 그 일을 계기로 독일인과 나 사이에 뭔지 모를 공통점이 있을 거라는 착각은 절대 안 한다. 나에겐 늘 예외가 빈번하고 실수가 잦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분명하고 완벽한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 끌리기 때문이다.

 

다시 덴마크로 돌아가 보자. 덴마크에 처음 갔던 것은 뉴욕에서의 유학생활 중이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미국인들은 늘 요란스럽게 친절했다. 그런 그들의 태도가 다소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그게 “서양 사람들”의 일반적인 매너일 거라 혼자 규정했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진짜 그러자는 게 아니라는 것도 곧 알아차렸다. 내가 입은 옷, 머리 스타일, 장신구들, 수업시간에 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민망하리만큼 거창한 칭찬 역시 모두 진심은 아니라는 것도 금세 파악했다.

 

그런데 덴마크인들은 미국인들과 사뭇 달랐다. 그들의 표정은 늘 조금 우울해 보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선 수줍어했고 어색해했다. 친해지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긴, 일조량이 적은 북유럽 나라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하지만 덴마크에 조금만 있어보면 그들이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따뜻하고 상냥하며 개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아이들을 가장 많이 입양하는 나라이고, 행복지수 상위권인 나라답게 타인에 대한 여유, 존중, 배려가 넘친다. 나는 이민자의 나라 미국보다 단일민족국가인 덴마크에서 훨씬 더 편안함을 느꼈다.

 

얼마 전 덴마크에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기숙사나 호텔이 아닌 친구의 집에 머물고 있다. 아직 몇 주 되진 않았지만 그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덴마크가 보인다. 내 나이, 사고의 방향과 깊이 등이 전과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함께 왔던 사람들, 방문한 목적, 계절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덴마크 국민 90퍼센트가 거의 동일하게 상향평준화된 삶을 누리고 있을 만큼, 다양한 면에서 배울 점이 많은 나라다.

 

하지만 이곳도 천국은 아니다. 전에는 온통 키 크고 날씬한 사람들만 보였는데 이 나라에도 비만과 성인병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부럽기만 했던 사회보장제도나 이민자 정책에도 고민과 갈등이 보인다. 완벽한 국가 의료보험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치과는 우리나라처럼 예외가 많다. 물가는 지갑을 열 때마다 가슴을 졸여야 할 정도로 비싸고, 무엇보다 음식이 맛이 없다. 거의 매일 성대한 식사를 함께 만들어 먹고, 그때마다 훌륭하다며 (미국인들처럼) 호들갑을 떨었으므로, 덴마크 친구들이 알면 기절할 일이지만, 전에는 왜 인식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다.
   
비행기를 타고 처음 한반도를 벗어나 본 이후 어느덧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촌스러움과 두려움으로 처음 남의 나라 땅을 밟았을 땐 차이점만 보였다. 설레고 감동적일 때도 많았지만, 불편했고 이상했고 싫을 때도 많았다. 이후 경험이 쌓이자 조금씩 공통점이 보였다. 사람 사는 모습 다 거기서 거기지 싶었다. 그 시기를 좀 더 지나 더 많은 세월과 사연의 레이어가 얽히자 비로소 사람이 보였다. 나와 인연이 된 사람들이 그 자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국적과도 별 상관없다. 그들이 살아오는 동안 마주했을 개별적, 사회적 상황이 있을 뿐이다. 세상에는 그냥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이 중에서 나와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이 수십 년간 지속되는 사람들은, 어쩌다 보니 지구 반대편에 혹은 이웃 나라에, 나보다 먼저 혹은 늦게 태어났을 뿐, 나와 닮았거나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거나 혹은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친구가 된 사람들은, 익숙한 곳에 있을 땐 잘 보이지 않던 내 모습을 거울처럼 비춘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실망스러울 때도 많다. 하지만 그걸 마주할 수 있어야 나이를 제대로 먹는다고 느낀다. 여행의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다.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 실내디자인전공
김진우, jinwookim@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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