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학   교육   법률   경제   일반   뷰티   문화   육아   스포츠   아이별   요가   택견   인테리어   요리   커피 

  • [일반] <조각, 건축, 벤치, 뭐라고 불러도 좋다, 아티스트 최병훈의 작품들>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양현모기자
  • 19.03.14 09:03:27
  • 공감 : 1 / 비공감 : 0
공감 비공감



최병훈의 아트퍼니쳐가 커졌다. 원래도 작은 사이즈가 아니었는데 더 커졌다.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사뭇 엄숙하다. 거대한 돌덩어리 앞에서 한 참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2017년 7월 가나아트 전시장에서 만난 그의 개인전(MATTER AND MASS _ ART FURNITURE전, 가나아트센터, 2017.07.21.-2017.08.15.)을 보며 느낀 첫인상이었다. 전시장에는 설치를 위한 어떠한 장치도 없었다. 광대한 면적이 그의 오브제만으로 가득 채워졌다. 

 

작품 명 <Afterimage of Beginning, 017-482>(사진 1)는 폭이 3m가 넘는 거대한 벤치다. 재료로 사용된 돌덩어리들은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온 현무암(basalt)이다. 방금 인도네시아로부터 도착한 듯 원시적이다. 억 천만 겁의 세월을 견뎌낸 자연석의 존재감이 묵직하다. 인도네시아 현무암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다르다. 일단 구멍이 없다. 대신 그 속에는 칠흑 같은 반전이 감춰져 있다. 이 작품에서 최병훈의 역할은 바로 그것들을 제대로 발현해 내는 것이었다. 현무암은 최병훈의 안목과 “최소한”의 손길로 인해 거대한 오브제로 탄생했다. 여기서 “최소한”이란 작가가 투자한 노동의 양이나 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작가는 이 “최소한의 손길”을 위해 무수한 시간을 침묵 속에서 버텼으리라. 절제하고, 덜어내고, 견뎌내면서. 40년을 한결같이 작가의 길을 걸어온 자 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의 내공이다.

 

형태가 주는 메시지는 무심하다. 돌덩어리로 변신한 사찰 현판의 일필휘지 같다. 하지만 물성을 끌어내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과정은 결코 무심할 수 없다. 돌들은 거뜬히 3톤이 넘어 다루기 쉽지 않다. 거친 부분을 다듬고 갈아내고 조각하기 위해선 물과 토치(blowtorch)를 이용한 지난하고 고단한 육체 작업이 필요하다. 마침내 그의 손길이 닿은 곳들이 깐깐하게 모습을 드러내면 그렇지 않은 곳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작품을 바라보다 나는 불현듯 장자의 무용지용을 떠올렸다. 작가의 손에 의해 드러난 속살의 눈부심은, 아직 만져지지 않은 거친 부분들 때문에 제대로 빛난다. 인도네시아 어딘가에서 숨죽이고 있었을 현무암 중 일부는 한국의 작가에 의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발견됐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재료의 본모습을 상당부분 차분히 유지했다. 발을 딛는 곳만이 땅이 아니듯, 사람이 앉는 곳만이 벤치가 아니며, 쓸모없는 부분이 있어야 비로소 유용한 부분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이제 한 번 다가가 앉아 볼까?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이미 돌 위에 앉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자연 속에 내 던져진 돌덩어리들은 늘 친근한 벤치다. 무너지거나 망가뜨릴 염려도 없다. 전시장에서도 우리는 맘껏 앉아볼 수 있었다. 혼자 앉아도 좋지만 여럿이 앉아도 좋다. 어디에 앉아야 한다고 굳이 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원하는 방법으로 벤치를 사용한다. 여유 있는 면적 때문에 낯선 이들과의 합석도 어색하지 않다.

 

작품에 앉을 때 나는 조심스레 손부터 뻗었다. 한옥의 아랫목에 엉덩이를 대기 전에 손이 먼저 바닥의 온도를 느끼고 싶은 것처럼, 현무암의 질감과 온도를 우선 감지하고 싶었다. 아주 천천히 작품에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며 갑자기 세상의 속도가 느려진다. 차경을 통해 마당에 들어선 자연을 관망할 때처럼,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정신적인 에너지가 나를 편안케 한다. 돌이라는 오브제가 나의 몸을 담는 그릇으로 전이되는 경험이다.

 

임미선 큐레이터(전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가 로잘린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 1941~ )의 글을 인용해 서술했듯이, “그의 작품은 ‘조각도 아니고 건축도 아니’ 거나 ‘조각이면서 건축’이다. 즉, ‘확장된 장에서의 가구(Furniture in the Expanded Field)’다. 따라서 그의 작업과 아트퍼니쳐는 장소(공간), 기능, 매체 그리고 관례화된 의식(고정관념)을 넘는다. 공간적인 실체 위에 쌓인 건축적 경험의 특징들이 도식화된 것이다.(<Mass and matter> 도록 39페이지에서 발췌 및 요약)”

 

작가 최병훈은 1952년생이다. 이순을 훌쩍 넘어 고희를 향해 간다. 2017년, 긴 세월 몸담았던 모교에서 정년퇴임을 하며 그는 이제야 진정한 아티스트로 데뷔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나는 홍익대학교 학부시절 은사님으로 그를 처음 만났다. 1988년 핀란드 헬싱키 미술 디자인대학 연구교수, 1989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대학 객원교수를 지내고 돌아온 그의 수업은 모든 면에서 신선했다. 목공예와 가구 디자인, 전통의 현대화와 미래를 향한 한국성 사이에서 길 잃고 헤매던 내게 커다란 충격을 줬다. 핀란드와 미국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그의 수업에선, 가구라는 것, 공예라는 것, 물성이라는 것 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당시의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의 혼란을 초래했다. 세월을 돌고 돌아 10여 년 만에 박사과정으로 다시 모교로 돌아간 다음에야 나는 비로소 그때의 질문들과 어렵사리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전통을 계승하려는 움직임과 세계로 나가려는 움직임이 대립적 구도를 형성하던 때였다. 이 두 가지가 실은 하나의 트랙 위에 놓여 있음을 그때는 참 알기 어려웠다. 어쨌든 지금은 우리 모두 진정한 ‘나다움’이 경쟁력의 근원임을 안다. ‘나다움’을 통해 한국성이 자연스레 묻어 나온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걸 탐구하고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역사적, 사회적 요인도 있고 교육의 문제도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보고 배우고 비평할 선행 사례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토종 한국인으로 평생을 이 땅에 살며 40년을 쉬지 않고 작업해 온 그의 존재와 작품이 소중하다.  

 

파리 국립 장식 미술관(Museum of Decorative Arts, Paris)의 디렉터인 올리비에 가베(Oliver Gabet)는 최병훈의 작품에 대해  ‘Koreanisms’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더불어 “한국성은 깊이 있는 성찰을 요하는 새로운 운동이자, 정의가 필요한 국제적 현상”이라 일갈했다. ‘최병훈 식 Koreanisms’의 정체는 뭘까? 그는 어떻게 “최병훈다움”을 실현했을까? 그는 말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시대정신에 맞게, 깊이 있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라고. 결국 오늘을 살아내는 것, 전통과 과거로부터 받은 영향을 현재와 미래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즉, 전통을 탐구하되 과거에 함몰돼지 말 것, 미래를 향해 촉을 세우되 뿌리를 잊지 말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 공간과 공간을 끊임없이 오가며 교감하되 몸에 힘을 빼고 중심을 잡을 것.

 

40년 전 그는 아트퍼니쳐라는 낯선 깃발을 들고 홀로 등장했다. 이후 모교에서 관련 교과과정을 개발했으며, 이제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는 아트퍼니쳐와 가구디자인을 상징하는 학과로 자리 잡았다. 그와 함께 Koreanisms을 구현할 수 있는 구조와 자원은 확보된 셈이다.

 

그런데 이제 그는 오히려 아트퍼니쳐라는 영역에서 탈피하려는 듯 보인다. 맨 발로 또다시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다. 가나아트에서 보여준 그의 작업이 이미 그랬다.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원인을 깰 수 있어야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음을 지금 이 시간에도 그는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사진 1>Afterimage of Beginning, 017-482
1600x800x750mm, 1680x800 750mm, Basalt, 2017
ⓒ Choi, Byung Hoon


  <사진 2>Afterimage of Beginning, 017-481
1800x650x700, 1400x650x700mm, Basalt, 2017
ⓒ Choi, Byung Hoon

 

 



Tags :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  
<의자가 된 도자기, 도예가 이헌정의 의자들>63회
갑상선질환에 대해서58회
2020대입 전형 선택 방법 - '최적 전형 선택과 집중' [ I ]50회
소아청소년기 고혈압44회
방귀 대장 우리 아이 괜찮은 걸까?41회
임신부를 위한 치아 관리 가이드40회
이야기 고사성어 201화 '금란지교'36회
대학원 진학(석사 학위 취득), 정말 필요한가요?35회
어둠의 왕이라 불렸다 '마약왕'33회
이야기 고사성어 200화 '포류지자'28회
<조각, 건축, 벤치, 뭐라고 불러도 좋다, 아티스트 최병훈의 작품들>0건
2020대입 전형 선택 방법 - '최적 전형 선택과 집중' [ III ]0건
요실금0건
내가 대한민국 2,700가구를 대표한다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국가대표가 되어보세요!0건
꿈을 이뤄주는 두뇌활용습관0건
간질간질 가려운 발 백선(무좀)에 관하여0건
갑상선질환에 대해서0건
이야기 고사성어 201화 '금란지교'0건
방귀 대장 우리 아이 괜찮은 걸까?0건
2020대입 전형 선택 방법 - '최적 전형 선택과 집중' [ I ]0건
<조각, 건축, 벤치, 뭐라고 불러도 좋다, 아티스트 최병훈의 작품들>1점
2020대입 전형 선택 방법 - '최적 전형 선택과 집중' [ III ]0점
요실금0점
내가 대한민국 2,700가구를 대표한다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국가대표가 되어보세요!0점
꿈을 이뤄주는 두뇌활용습관0점
간질간질 가려운 발 백선(무좀)에 관하여0점
갑상선질환에 대해서0점
이야기 고사성어 201화 '금란지교'0점
방귀 대장 우리 아이 괜찮은 걸까?0점
2020대입 전형 선택 방법 - '최적 전형 선택과 집중' [ I ]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