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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당사자 되기, 당사자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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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양현모기자
  • 19.02.08 09: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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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25일, 친하게 지내던 덴마크 디자이너 부부가 그날 아침 태국에서 쓰나미로 사망했다. 그들이 먼 타국까지 와서 순식간에 죽어가야 했던 낯 선 자연현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충격에서 벗어난 이후 나는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관련된 책을 찾아 읽었고, 협동조합에 가입했으며, 몇 개의 단체를 후원했다.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는 것을, 나이 40이 다 돼서 직장이 있는 충주로 이사 온 이후 비로소 실감했다. 그전의 내게, 서울 이외의 도시는 잠시 머무는 곳, 스쳐가는 곳이었다. 어쩌다 머물렀던 지역의 삶과 자연은 감동이었지만, 내가 일상을 보내야 하는 곳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지하철과 백화점이 없는 도시는 불편하고 초라했다. 그제야 서울 이외의 다른 도시들, 한반도의 남쪽이 온전히 보였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8년 3월 무렵이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의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학교 공부만으로 대학에 갔던 학력고사 세대인 나는 순진하고 무지했다. 노골적으로 촌지를 바랐던 담임선생, 사교육의 영향력을 인정하다 못해 의지하고 가는 교과과정, 타지에서 온 직장 맘인 내게는 곁을 주지 않았던 상위권 학생 엄마들의 공고한 네트워크. 고학년에 올라가서도 미술, 체육, 점심시간만 좋다던 딸아이는 학교가 재미없다고 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단체에 가입해 같은 고민을 가진 부모들을 만났다.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옆집 엄마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딸아이가 대안학교를 선택한 그 순간부터,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공교육에 대한 내 문제의식은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우리들은 세월호에서 아이들을 잃은 부모,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지 못하고 결국 나비가 되어 떠나신 김복동 할머니, 이동권 투쟁을 하느라 바닥을 기어야 하는 장애인의 심정에 공감하고 함께 가슴 아파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들과 함께 행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처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당사자가 되거나 그에 걸맞은, 결정적이고,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계기가 없다면, 특정한 사회적 문제와 관련된 아픔에 제대로, 혹은 지속적으로 공감하기 어렵다.

 

얼마 전 종영한 <스카이 캐슬>은 교육자이며,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드라마였다. 배경이 된 스카일 캐슬은 대한민국의 0.1%에 해당하는 특수한 장소였을지 모르나, 그들이 욕망했던 것들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다분히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살고 있는 집과 입고 있는 옷에서는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그들이 벌였던 행태는 낯설지 않다. 가출한 아들을 찾아 눈물의 재회를 하고서도, 다음날 아침 늦잠자는 아들을 보면 속이 뒤집힌다. 딸의 무단 조퇴를 알리는 담임의 전화를 받는 순간 딸의 안부보다 생기부(생활기록부)가 더 걱정된다. 하버드생 딸은 자랑거리지만 클럽의 매니저인 딸은 아예 딸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은, 초라한 인격체로 얼떨결에 엄마가 된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카일 캐슬>은 “리얼 코믹 풍자”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사람이 여럿 죽는다. 나는 초반에 등장한 영재 엄마의 죽음 때문에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서울 의대라는 목표에 가정이 파탄 나고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엽기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이 우리의 현실임을 정조준할 거라 생각했다. 어느덧 괴물이 돼버린 우리 자화상의 본질에 주저 없이 다가갈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드라마 이후에는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생겨날 것을 기대했었다.

 

황당하게도 드라마는 등장인물 모두가 개과천선한 상태에서 끝나버렸고, 염정아는 사교육 광고에 등장했다. 예서가 썼던 일명 사도세자 의자, 몇 십억을 호가한다는 코디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은 오히려 상승했다. 나는 또다시 순진하고 무지했던 걸까?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이 죽도록 내버려 둘 순 없지 않느냐는 자성의 움직임은 이 드라마 이후에도 일어날 수 없는 걸까?

 

교육문제에 흥분해서 떠들다 보면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럼, 당신이 한번 해결해 보시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미 기회를 잃은 건 아닌지 두렵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조금은 우회적 방법이 있다. 선거연령을 낮추는 것. 오스트리아처럼 16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한국을 제외한 OECD 국가들처럼 18세로 낮추는 것. 18세, 맞다. 고 3이다. 정치인들은 물론, 정신 나갔냐며 펄펄 뛸 차민혁(기준, 서준 아빠)들이 보이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세월호의 부모들은 살아있는 동안 내내 그 비극의 당사자다. 위안부 할머니들 역시 그렇다. 하지만 교육문제만큼은, 모두가 당사자였다가 시간이 지나면 벗어난다. 벗어나는 순간 “하늘을 찌를 것 같던 문제의식은 빛의 속도로 사라진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아이들은 사도세자 책상에 스스로를 가두고, 가정을 파괴하는 코디를 갈망하며, 친구의 죽음에도 흔들림 없이 공부하는 인간으로 자란다. 그렇게 자란 ‘예서’들이 대통령이 되고, 법관이 되고, 의사가 되고, 선생이 되는 대한민국을 상상해 보라.

 

그러니 더 늦기 전에,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을 입시지옥과 교육문제의 당사자로 만들어야 한다. 고 3과 그들 부모의 절규에 귀 기울 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유치원 3법에서 봤듯이 결코 쉽지는 않을 텐데, 그에 대한 해법은 다른 분들이 좀 알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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