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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2019년, 디자인 트렌드 대신 나 자신을 알자>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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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양현모기자
  • 19.01.11 08: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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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 복장과 두발 규제로부터 해방된 대학생들의 패션은 “과잉” 그 자체였다. 여학생들의 경우 허리까지 오는 긴 뽀글뽀글 파마로 볼륨을 살렸고, 그것도 모자라 앞머리를 닭 벼슬처럼 세운 뒤 헤어스프레이로 고정했다. 여대생 2-3명이 인도를 걸어가면 교행이 불가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우리는 거대한 머리를 이고 다녔다. 옷차림도 마찬가지. 셔링을 잡아 부풀려진 어깨 속에 패드까지 넣어 강조한 상의와 길고 통이 넓은 바지나 치마를 입었다. 화장의 색조는 진하고 화려했다.

 

90년대 중반, 유학을 다녀왔더니, 친구들은 검은색 짧은 생머리에 단색의 정장을 하고 나타났다. 화장기가 없거나 없어 보이는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이 대세였다. 공간 디자인 분야에서는 소위 젠 스타일(Zen style)이 유행했다. 잘 나간다는 식음공간에는 정갈한 가구와 소품이 드문드문 놓였다. 벽은 주로 흰색 아니면 단색이었고, 차분하고 은은한 조명이 사용됐다. 그 많던 장신구들과 화려한 색채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로부터 다시 10년쯤 지나자 세련된 디자인의 대명사이던 젠 스타일이 지겨워졌다. 왠지 모르게 초라했다. 사람들은 뭔가를 보태기 시작했다. 볼륨, 색상, 장식이 늘어갔다. 모든 것들이 다시 “과잉”을 향해 나갔다. 하지만 이 역시 정점을 찍은 다음 변화했다. 정갈함, 절제, 단색 등의 키워드가 다시 등장했다.

 

어렵고 복잡하게 얘기할 것 없다. 큰 그림에서 보면, 디자인 트렌드는 과잉과 결핍의 연속이다. 차고 기울기를 반복한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혹은 정치, 경제적 여건에 따라 각론과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을 뿐. 생로병사, 새옹지마, 작용 반작용 등의 진리는 디자인 트렌드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 어떤 것도 영생을 누릴 순 없다.

 

그래서 궁금하다. 흐름이 이처럼 명징한데 디자인 트렌드를 예측하거나 이끌어나가는 것은 왜 그토록 어려울까? 우리는 왜 아직도 디자인을 배우러 유럽이나 미국으로 갈까? 왜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한국의 디자이너 이름이 선뜻 떠오르지 않을까? 우리의 도시, 거리, 아파트, 상점 디자인에서 나는 왜 뭔지 모를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낄까?

 

세계적인 디자인 페어에 가 본다. 가기 전에, 그 해 디자인의 트렌드, 키워드, 그리고 전시의 기획의도 등을 분석한 글을 섭렵한다. 페어 안에는 내가 읽은 글들에 충실한 디자인들이 즐비하다. 트렌드에 반하는 디자인은 그 무대에서 함께 할 수 없다. 진부하고 시대를 읽지 못한 디자인이나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열심히 사진 찍고 공부하고 메모하면서, 뒤떨어지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 전시장의 중앙에 배치돼 있는 곳, 카메라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곳에 가 보면 심정이 복잡해진다. 그곳은 소위 그 시기에 가장 잘 나가는 디자이너들의 영역이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는 트렌드가 아닌 트렌드 너머의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 폭포처럼 쏟아졌던 방대한 분량의 트렌드 분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들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곳에는 트렌드를 스스로 만들어 낸 사람들의 디자인으로 가득하다. 그들의 디자인은 새로우면서도 익숙하다. 친근하지만 진부하지 않다. 마치 처음 들었는데도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음악처럼, 처음 만났는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느껴진다. 비결이 뭘까? 내가 생각하는 답은, “그들다운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트렌드의 변화에 지나치게 일희일비하지 않고, 세월의 변화와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긴,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디자인. 그래서 그 어떤 것과도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하고 특별하고 소중한 디자인. 스스로가 트렌드가 되어 역사에 남는 디자인.

 

결국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돌아온다. 나 자신을 알자. 내가 누구인지, 어떤 디자이너인지, 어떤 것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나를 움직이는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역사를 관통해 온 사람인지, 나는 어떤 지리적 여건 속에서 성장해 왔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을 방해하는 것(사람, 상황 등)들이 있다면 그들과 싸우자. 찾아 없애자. 그래야만 비로소 “나 다운 디자인”이 가능하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트렌드를 분석하며 뒤따라가느라 지치고 피곤한 삶 대신, 창의적이고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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